하늘뜻묵상하기2020년 5월 14일 목요일

본문 : 욥기 27:1~23

말씀 : 악인의 분깃, 포악자의 산업 (강재춘 선교사)


대부분의 이야기는 "선과 악"의 구도로 짜여집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선한 사람, 정의로운 사람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그가 승리하기를 응원합니다. 때로는 "강한 자와 약한 자"의 대결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이 때에도 사람들은 약자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약자의 도전이 승리로 끝나기를 기원합니다. 그런데 선한 사람과 선한 사람의 대결, 악인과 악인의 대결에서는 주춤 거릴 수 밖에 없습니다. 감정을 이입하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욥기를 읽을 때, 대부분 사람은 욥에게 감정을 이입합니다. 그렇지만 욥의 친구들이 하는 말들도 일반론적으로 옳은 소리입니다. 또 욥이 하나님을 대놓고 저주하지는 않지만, 신세를 한탄하고, 하나님이 자기를 버리셨다고 생각하는 말을 할 때에는 욥에게 감정 이입이 어려워 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전적으로 선과 악으로 구별 할 수도, 전적으로 강과 약으로 구별 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이 의로운 자는 복주시고, 악한 자는 벌하신 다는 일반론도 성경은 부정합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정당함을 물리치시고, 영혼을 괴롭게 하셨지만 결코 하나님 앞에서 입술의 불의를 말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자기의 원수는 악인 같이 되고 자기를 치는 자는 불의한 자 같이 되기를 원한다고, 즉 구체적으로는 지금 욥을 정죄하는 친구들이 벌을 받기를 원한다고 막말을 하고 있습니다. 욥은 그들이 지금 당장은 번성하는 것 처럼 보여도 하나님께서 그들의 결말을 그냥 보고 계시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이 그들을 던져 버리신 후에 사람들은 그들을 보며 비웃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제는 정말 욥과 친구들 중에 누가 더 옳은지 구별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묵상하려 하는 것은 누가 더 옳은 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오히려 정말로 "하나님께서 악인을 아끼지 않고 던져 버리시는 분"이신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일반론적으로는 그렇지만,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분명하게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은 당대에 악인으로 구별되는 세리, 창녀를 친구로 삼으셨고, 십자가 위에서는 살인죄로 죽어가는 사람에게 낙원을 약속하셨습니다. 신앙적으로도 그리스도인을 죽이고 핍박하는 일에 앞장 선 죄인인 사울이 사도로 부름 받아 바울이 되어 사역을 감당한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사실 하나님은 단 사람의 영혼도 함부로 던져 버리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지금 우리가 악인으로 평가하는 어떤 사람도 하나님은 함부로 평하고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감정을 이입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그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의 악인도 함부로 버리지 않으시는 그 사랑 때문에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