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뜻묵상하기2020년 2월 6일 목요일

본문 : 누가복음 7:36~50 (한상혜 권사) 

말씀 : 더 많이 탕감 받은 이가 더 많이 사랑합니다. (강재춘 선교사)

일반적인 양의 개념으로는 더 큰 선물, 더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 더 기뻐하고, 감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큰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오히려 무덤덤해 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 받은 신하가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탕감해 주지 않는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용서에 인색하고 또 감사에 인색한 사람의 본성을 이야기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비유는 말 그대로 양적인 비교로 "더 많이 탕감 받은 사람이 더 사랑한다."라는 원리를 말씀하십니다.

아직까지는 많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초청하여 식사를 하면서 그분에 대해 알아보고 있습니다. 오늘도 그런 자리에 초대 받으신 예수님과 바리새인 앞에 한 여인이 찾아와 무릎을 꿇고 눈물로 발을 닦은 후 옥합을 열어 향유를 부어 영광과 감사를 돌렸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은 예수님이 그 여인을 죄인으로 정죄하고 물러나게 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라고 속마음으로 말한 것을 달리 번역하면 "어 이 사람 선지자라면서 죄인이 자기를 만지는데 물리치지도 않네!"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생각을 오백 데나리온과 오십 데나리온을 빚진 자 들이 탕감 받는 비유를 통해 비판하십니다. 더 많은 죄를 사함 받는 이가 더 많이 감사할 것이고, 스스로 죄인임을 고백하는 이들이 주님을 더 사랑하는 것이라고 가르치십니다.

바리새인들은 죄인을 정죄하고 멀리해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했습니다. 행위로 보면 분명 바리새인들이 세리나 죄인들 보다 천국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라고 예수님 앞에 나와 고백하는 이들은 죄 사함을 받고 천국의 상속자가 됩니다. 그리고 바리새인, 유대인들은 죄를 고백하지 않기에 용서받지 못하고 심판 받을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을 표면적으로 보면 더 많이 사랑 받은 사람이 더 사랑하는 것, 더 많이 탕감 받은 사람이 더 기뻐하는 것 이라고 적용하는 것으로 마무리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더 중요한 포인트는 "스스로 죄인이라고 고백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빚의 양을 떠나서 빚진 것, 죄 지은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 은혜가 필요치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죄인임을 고백하며 은혜를 구하며 나오는 이들을 기다리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