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뜻묵상하기2020년 1월 9일 목요일

본문 : 요한복음 3:22~36 (한상혜 권

말씀 :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강재춘 선교사)


스포츠 분야에서는 라이벌 매치는 더비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더비 매치는 영국 프리미어 리그의 맨체스터 시티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맨체스터 더비, 스페인 프리메라기가의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엘 클라시코 등의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 속에도 많은 라이벌들이 있습니다. 스승과 제자 사이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상과 현실을 바라보는 지향점의 차이에서 라이벌로 일컬어지곤 합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도 대표적인 예술적 라이벌로 사람들 사이에 회자됩니다. 그런데 라이벌이 되려면 어느 정도 능력과 영향력이 비등해야 합니다. 지나치게 한 쪽으로 치우치면 우리는 이것을 라이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오늘 본문 속에 있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라이벌 정도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사역 할 때에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가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고 "사람들이 다 그에게 갑니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나는 그 분의 신발 끈을 묶는 것도 감당하지 못할 사람이다."고 말했던 것은 기억도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저 얼마전까지 가장 잘 나가던 자기들의 선생이 뒷 방 늙은이 신세가 되는 것이 서러웠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때를 알지 못하고, 자기와 상대방을 잘 파악하지 못하면 쓸대 없는 라이벌 의식을 가지게 됩니다.


예수님과 세례 요한이 라이벌이 될 수 없었듯이 연약한 우리가 하나님께 라이벌 의식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과 대등하게 되겠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바벨탑 시대와 같은 하나님의 심판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다행히 세례 요한은 자기의 시기와 능력의 한계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일을 잘한 세례 요한을 향해 예수님은 여자의 몸으로 태어난 이들 중에 세례 요한 보다 더 큰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무엇이 되고 싶고, 내가 더 존중받고 싶다고 해서 큰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어진 사명을 분명히 알고 최선을 대해 감당하는 자, 그러다가 누군가가 내가 감당한 것 이상으로 일을 잘 감당하여서 더 이상 내가 있지 않아도 될 때에, 라이벌 의식을 느끼며 끝까지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었음을 알고 자기 역할을 내려 놓는 자가 바로 큰 자입니다. 오늘 그런 큰 사람이 되십시오.